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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bones 2011. 4. 9. 16:42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 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2010년 가을호 《문예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