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f
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bones
2010. 1. 1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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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의해 표현된 장면은 직접적인 예상의 영원한 현재를 창조해 내게 되며, 기억은 필요한 것, 혹은 매력적인 것이기를 그치게 된다. 기억의 상실과 함께, 의미와 판단의 연속성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된다. 카메라는 우리에게서 기억이라는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처럼 우리를 꼼꼼하게 살피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꼼꼼하게 다른 것들을 살펴 주게 된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어떤 신도 그토록 냉소적인 적은 없었는데, 그 까닭은 카메라는 잊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사진은 언어로 언급되고 있는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되도록 동어반복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기억은 전혀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기억은, 말하자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모든 관념 연합들이 동일한 하나의 사건으로 통하게 되는 것인 방사형으로 작용한다. (...) 만약 우리가 어떤 사진을 경험, 사회적 경험, 사회적 기억이라는 맥락 속에 다시 집어넣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기억의 법칙을 존중해야만 한다. 우리는 인화된 사진을 그것의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놀랍도록 결정적인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도록 해야만 한다. (p.8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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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들은 그것이 달려 있는 건물들의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밝혀 준다. 밝혀 준다는 말만은 잘못된 것일 수가 있는데, 그 까닭은 그 말이 밝혀내기라는 행위에 앞서 하나의 비밀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창문들은 그것들이 달려 있는 건물의 생명, 혹은 생명들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그것들의 내면이 결코 내면이었던 적이 없음을 입증하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 내면을 보여 준다. 그 어떤 것도 내면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모든 것은 외면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도시 전체는 내장이 쏟아져 나와 있는 동물과도 같다. (p.146)